[통일논단]
- 한반도 비핵화 머나먼 여정 -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흔히 ‘북 핵 폐기 불가능설’을 주장한다.
지난 6월 베이징의 한 세미나에서 중국의 한 전문가는
“북한 핵 폐기는 정치적 차원에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워싱턴에서도 미 의회의 한 한반도 전문가가
우리 야당 국회의원에게 “미국도 사실상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김정일이 이긴 것”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북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그것이 한국 탓이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컨대 미국의 전문가들에게 2·13회담을 따져 물으면
‘중국은 앞을 가로막고 한국은 발목을 잡는데
우선 그렇게 더 만들지나 않게 막아 놓아야지
다른 도리가 없지 않으냐?’는 식의 대답이고,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강조하면 ‘먼저 한국 정부에게 말하라’고
비아냥대는 것이다.
사실 중국이나 미국은 북한 핵 문제란
그저 수많은 세계적 안보 이슈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요,
북한 핵의 직접적 위협 대상은 어디까지나 한국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앞장서서 ‘북한 핵은 자위용일 뿐’이라며 북한을 거들었다.
전쟁을 각오할 때 지켜지는 것이 평화요,
평화롭게 해결하려 할수록 전쟁의 위험에 놓이는 게 안보이론의 정설이다.
그런데 수백만의 국민을 굶주린 채
핵을 만드는 상대와 언필칭 ‘평화’를 위해 스스로의 손발을 묶거나
걸핏하면 국제적 압력도 대신 막고 나섰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수많은 ‘성공적’인 북핵 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더욱 성공적으로’ 핵을 개발할 수 있었던
기묘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북한 핵실험. 그것은 우리 정부가 지금 같은 기조라면
북한 핵의 폐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임을 예고해 주는
경종(警鐘)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이 곧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려 한다고
일부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다 해결된 듯 환호하고,
정부에서도 이번에는 식량이며 유류를 퍼나르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을 계기로 연내에 정상회담과 종전선언까지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핵은 최선의 조건 속에서 빠르게 기정사실이 되어 갈 것이다.
더욱이 북핵의 핵심과제는 8발 아니 20여발까지 추정된다는
기존 핵탄두와 50㎏에 달하는 핵 물질의 폐기인데
그럴 가능성은 여전히 거의 없다.
반면 북한은 단거리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핵과 미사일이 결합된 보다 효과적인 단거리 ‘핵 타격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결국 낡은 원자로 하나를 버리는 대신 오히려
더욱 큰 위협을 가할 능력과 협상력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같은 실패를 반복해도 정도 문제지 너무한다 싶다.
북한은 헛말이라도 ‘적화통일’을 포기한다고 한 적이 없다.
더욱이 평화적인 경쟁으로는 북한이 남한을 이길 수 없는 데다
핵을 보유하고도 패배를 자초할 북한도 아니다.
많은 군사전문가는 우리나라가 자칫 북한 핵의 인질로 끌려다니며
적화의 문턱을 넘어 평화체제에 조종(弔鐘)을 울리게 될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제는 야당까지도 ‘북한 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아도
경제지원은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북한에는 마음 놓고 얼마든지 핵을 더 만들어도 좋다는 신호요,
미국에는 야당이 집권해도 미국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선언과 다름없다.
야당은 대선에 이길 신기묘산(神技妙算)이나 되는 듯 원칙을 저버리며
파격행보를 보였지만 북핵 문제로 불안감을 안고 사는
많은 국민에게 깊은 상처와 우려를 안겼다.
더욱이 과거 촛불시위에 들러리 섰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것임은
물론 우리에게 겨우 살아남아 있던 승리의 마지막 기회마저
짓밟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우리 아들딸이 북한 주민의 저 참혹한 삶을 살게 되지나 않을지 하는
걱정은 너무 과민한 탓인가.
김희상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전 국방대 총장
- 세계일보 -
본면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