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이야기]
- 엄마를 부탁해 -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소설가 신경숙의 최근작 ‘엄마를 부탁해’는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엄마, 이 호칭이 낯선 사람이 있을까.
‘어머니’가 관습적 도덕의 세계에 속한다면 ‘엄마’는 생리적 본능의 영역에 해당된다.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모두 태곳적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엄마가 함께하는 한 누구도 외롭지 않다.
엄마는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 유폐해야 했던 온갖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던 기억들,
그 원초적 감각을 대변한다.
엄마는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자 마르지 않는 사랑의 화수분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 무엇이다.
그런데 신경숙은
그 엄마가 일주일째 실종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니, 엄마는 실종의 주어가 아니다.
그녀는 다만 우리가 잃어버린 대상일 뿐이다.
(우리가)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지, (엄마가) 실종된 것이 아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생일상을 받기 위해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오던
칠순의 노모가 서울역 한가운데에서 동행했던 남편의 손을 놓치고 그만 길을 잃어버린다.
소설은 이 엄마를 찾아 헤매는 소설가 큰딸과 장남,
그리고 남편의 시점을 번갈아 뒤섞으며 도대체 ‘엄마’란 누구인지,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 그녀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녀가 엄마가 되는 순간 포기하고 억압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파헤친다.
이 파헤침의 끝에서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엄마’라고 부르는 자들의 울음 섞인 외침이다.
그렇다.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묘한 떨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엄마는 1938년 한반도 J시의 진뫼라는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고생을 하다가 휴전 직후
열일곱의 나이로 십여 리 떨어진 이웃마을로 시집을 갔던 ‘박소녀’라는 여인이다.
이 여인의 프로필이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로부터 조금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엄마를 많이 알고 있다.
글자를 배우지 못해 평생 동안 캄캄한 어둠 속에서 외롭게 살다 간 여인,
비록 자신은 공부를 하지 못했으나 자식들에겐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던 여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딸이 자신과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딸에게 끊임없이 ‘너는 나처럼 되지 말아라’라고 당부하던 여인.
이 여인들을 기억해 내는 목소리에 어찌 죄의식과 자책이 섞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여인들은 소설 속의 인물이자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이며 또한 우리 모두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런 여인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는 일주일째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다.
엄마는 우리에겐 이미 잊어버린 기호에 불과하다.
엄마를 기억하기엔 지금 우리의 일상이 너무 바쁘고 힘겹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그 자리에 아무런 불평 없이 존재하는 사람일 뿐 되돌아보고
곱씹으며 함께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엄마를 부정하는 목소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와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엄마를 부르는 순간,
우리는 간신히 벗어나온 저 유년의 혼란, 그 미숙한 본능 속으로 회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이 합리적인 효율성의 세계 속에서
이토록 부정되어야만 할 미망에 해당된다면 그것은 한 사회,
아니 한 세계 전체가 공모해온 어떤 원칙, 어떤 음모의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
만약 우리가 엄마를 부정해온
이 세계의 규율 속에서 뭔가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우리의 사랑을 속절없게 만들고 대답 없는 메아리로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원칙을 재고할 때가 되었다.
영원히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 소리와 함께 잠들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엄마의 그늘을 잊어버리고 산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엄마는 엄마다.
이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회는 영원한 미숙아들의 유치원일 뿐이다.
엄마에게 엄마의 자리를 되돌려주자.
정말, 엄마를 부탁한다.
- 신수정 문학평론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기사입력 2008.11.28 (금) 20:43, 최종수정 2008.11.28 (금)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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