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 [오택용교수의 말씀이야기]- 하나님의 주체성은 창조성을 토대로 위해주는 것이다 -

말씀이야기

선문대학교

신학전문대학 교수

오택용



- 하나님의 주체성은 창조성을 토대로 위해주는 것이다 -



하나님의 외적인 4대 주류속성은 창조성 주체성 관계성 통일성이다. 외적인 4대 주류속성 은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창조성을 토대로 주체성이, 주체성을 토대로 관계성이, 관계성을 토대로 통일성이 나타난다. 주체성은 창조성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창조성이 없는 주체성은 참된 주체성이 아니다. 주체성은 창조성을 토대로 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위해주지 않는 주체성은 참된 주체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 주체성을 확립하는가? 세상은 군사적인 힘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려고 하고, 경제적인 힘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려고 하고, 지식의 힘을 가지고 주체성을 가지려고 하고,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주체성을 행사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성을 가지고 상대를 위해줌으로써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주체성을 행사하는 원칙은 세상과는 사뭇 다르다.

첫째로 하나님의 주체성은 창조성을 가지고 위해주는 원칙이 있다. 하나님의 주체성은 창조성을 토대로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위해주는 것이다. 주체성은 창조성을 뿌리로 해서 주체가 되게 한다. 창조성을 가지고 위해주는 사람이 주체이며, 주인이다. 창조성을 가지고 위해주겠다는 의식이 주체의식이며, 주인의식이다. 창조성을 가지고 보다 많은 것으로 위해주는 자가 주체다. 창조성을 가지고 보다 좋은 것으로 위해주는 자가 주체다. 창조성을 가지고 보다 빨리 위해주는 자가 주체다. 양․질․속도 면에서 보다 위해주는 자가 주체다.

창조성을 토대로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늘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창조해서 위해줘야 한다.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창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을 무한히 투입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무한히 투입한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성의 주체인 자기 자신을 제로(zero)가 되게 한다. 창조성의 주체인 자기 자신이 대상의 종이 되어 섬기게 한다. 결국 창조성을 토대로 한 주체성은 위하여 섬기는 주체를 의미한다.

창조성을 토대로 하는 주체의식이나 주인의식은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대를 위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창조성을 토대로 하는 주체성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투입하고 잊어버린다. 창조성을 토대로 하는 주체성은 상대가 나를 위해줄 때 어쩔 수 없이 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위해주는 것이다. 참된 주체성은 상대를 위해서 절대 유일 불변 영원히 투입하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주체성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원칙이 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다. 나의 최고를 투입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주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줄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나의 창조성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줄 때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을 줘야 한다. 나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로 얻는 것을 줘야한다. 나의 최고를 투입한 결과를 주는 것이다. 가장 좋을 것을 주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이다. 가장 첫 것을 주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만들 수 없을 때는 나의 정성을 투입해서 얻은 소득으로 구입해서 줄 수도 있다. 이때 타인이 노력한 결과로 얻은 것을 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원칙에서 보면 의적(義賊)은 존재할 수 없다.

창조성이 토대가 된 주체성은 줄 때도 상대가 원하는 방법으로 주는 것이다. 인생은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술에는 원칙과 기교가 있다. 창조성을 가지고 위해주는 데에도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상대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위해서 어떤 것을 주기로 작정했으면 상대가 좋아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가 싫어하는 방법으로 줘보라. 받기는 받아도 곧바로 집어던질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먹이기 위해서 약을 만들 때 그 껍질에 단 것을 발라서 약을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주체성은 대상을 끝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보호하고, 끝까지 육성하는 원칙이 있다.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대상이 잘 못한 것도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대상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대신 책임지는 것이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 자는 주체가 될 수 없다. 책임지지 않는 자는 주인이 될 수 없다. 책임지지 않는 자는 주체성을 행사할 수 없다. 대상이 실수한 것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야 참된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다.

끝까지 보호한다는 것은 대상의 실수까지도 보호해주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자기도 모르게 실수하여 살인한 사람이 피신할 수 있는 ‘도피성’을 지었다. 그래서 실수로 살인한 자가 그 성에 들어오면 누구도 그를 잡아가지 못하게 했다.(수 20:1-8) 주체는 대상을 보호할 때 ‘도피성’의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보호해야할 대상이 집안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가능하다. 실수한 사람이 내 집안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의 일이 집안 일이 된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는가. 모든 식구가 합심해서 어려움에 처한 자를 끝까지 보호하고 도와주지 않는가.

끝까지 육성한다는 것은 대상이 보다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대상을 성장시켜 주는 것이다. 주체를 만나기 전보다 만난 이후에 더 성장했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대상의 잠재력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도록 키워주는 것이다. 대상이 발전하지 못하고 정지하는 것은 주체의 책임이 크다. 주체가 대상의 발전을 정지시키는 것은 대상을 절망으로 이르게 하는 행위다. 대상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하고 육성할 책임을 지닌 주체는 경제력과 설득력과 외교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래야 창조성이 토대가 된 주체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를 하늘을 위하여 뿌리며’ 시종여일 남을 위하는 생애를 살아오셨다. 하나님의 주체성은 창조성을 토대로 확립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볼 때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자는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창조성을 토대로 상대를 위해 종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가?’ 진솔하게 ‘그렇다!’ 라고 답변할 수 있다면 ‘나는 주체성을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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