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0일 화요일

[설교한편]-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 수 있을 때 -

훈독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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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 저희들은 남루한 옷을 입고 추한 모습으로 본래의자기 집을 찾아 안방에 들어온 탕자와 같사옵니다. 아버님께서 잃어버린 아들딸을그리워하신 것이 6천년이었사옵고, 저희도 6천년을 사탄에게 유린당하여 왔사옵니다. 아들딸을 찾기 위해 허덕이신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저희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모양이야 추하든, 얼굴이야 어떻든 아버지를 알아보는 아들딸을 원하셨사오나,아들딸이면서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붙들고 서글픈 역사노정을 걸어오신아버지 앞에 저희들이 무슨 말을 하오리까. 이제 저희는 이 땅 위에서 그 무엇을원치 않사옵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 수 있는 그 한 가지가 저희의 소원이옵니다.말씀선집8권-331면

2) 여러분은 성경에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세상에서도 불효를 하는 자식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불효 자식들이나탕자를 회개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무슨 길이겠느냐? 부모가 돈을많이 가지고 탕자를 그 돈 앞에 굴복하게 해서 회개시킬 수는 없습니다. 탕자가회심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인간으로서 개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무엇이냐하면 끊임없는 부모의 사랑에 부딪히게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그 사랑이하늘땅보다 더 높고 깊다는 것을 느끼고, 부모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거기에서 사랑의 본연의 가치를 느끼게 될 때, 비로소 탕자가 회개할 수 있는것입니다. 여기에서 운행되는 사랑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선집29권-7면

3) 생활을 하는 데는 그저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아닙니다. 나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어떤일이 있더라도 타격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충격되는 말을 듣더라도타격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령 타격받을 수 있는 일이 생겨 자기가 억울한입장에 서게 되어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흥하게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미래의 때가,내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환경을 넘기 위해 겸손한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 들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선집42권-57면

4) 천국에 갈 수 있는 결정은 어디서 하느냐? 여러분끼리끼리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옥도 끼리끼리 결정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다른데서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는 자의 어머니가 되고, 고통받는 자의 아버지가되고, 슬픈 자의 어버이가 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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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더라도 믿고 죽고 망하더라도 믿고 망하자. 뜻길믿음의 장에서
식구님들, 말씀집 8권 332-54의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를훈독해보세요 너무 은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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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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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독한 말씀의 요지는 우리 신앙인들은 마치돌아 온 탕자와 같다는 것, 탕자가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로알아볼 수 있을 때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한 이때에 심각하게 받아드려져야 하는 말씀으로 압니다.

저는 지난주에 저는 7대조 조상해원이 마지막으로있다고 해서 청평에 다녀왔습니다.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수련에 임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미숙했지만 사람이모여든 것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이 많았습니다. 그날, 청평에는 약 8천명이넘게 몰려든 식구들, 아이들까지 동원된 가족들이 많았습니다.
각 나라에서 각가지 얼굴빛을 한 식구들이 모여왔습니다.만 명 성전이 완공도 되지 않은 채 식구들을 받고 있었습니다.

95년부터 98년까지 2박3일, 3박4일, 40일수련기간동안에 청평을 다녀간 인원은 24만명을 넘었습니다. 그것도 99년은빼고도 말입니다. 물론 여러 번 다녀간 사람도 있지만 대단한 일입니다. 종교단체에서기도원이 잘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곳에서 만 명 성전, 병원이 신축되고있었습니다.

현재 답답한 우리 주변환경 속에서 비전과희망이 있는 장소를 대라면 저는 선뜻, 청평성지와 선문대학을 들 수 있다고봅니다. 선문대도 99년 2학기 좋은 등록률을 비롯해 신축한 학생회관을 보면대단합니다. 며칠 전에 교수회의에서 교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하는소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불안한소리와 좋치 않은 소식들이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이 두 곳을 제외하고는모두가 어려운 난관 투성이 입니다.
최근에 한국교회의 책임자들은 교회 식구가 늘지않는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재단 산하의 기업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속에 싸여 있습니다. 신문들은 다투어 (미디어 오늘209호, 9.8, 한계례 9.2)이상회 전 세계일보 사장의 출국 금지설을 쓰고 있고, 하이텔 통일교회 동호회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얘기가 오고 가고 있습니다.
사정없이 우리 스스로를 비판한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심지어 우리가 모시는 지도자에 대한 혹독한 비판도 실렸습니다.
이상회 전 세계일보 사장의 브리지포트 부총장 임명에대한 거센 반발여론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각 신문들의 보도 내용을 인용하면서한탄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곳에 올라 온 내용들은 함부로 삭제하기도 쉽지않습니다. 이런 비판의 글에 대하여 어떤 젊은이가 색다른 의미있는 글을 올렸습니다.

"젊은이의 눈으로 볼 때, 합리적인눈으로 볼 때, 분명히 우리 통일가의 현실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리고 우리의 이상을 사랑하고 그 이상을 성취해야할 주체세력으로서의 조직에대한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통일가의 젊은이라면 우리의 모순된모습을 당연히 변혁시키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이상이 원리적 세계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현실 비판과 그 대안 또한 반드시원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그것을 망각하곤 합니다.때로는 변증법적 방법론으로 수수법적 세상을 이루려고 합니다."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부분을 소개를했습니다.

우리 식구공동체에는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해석하고 평가하는 데는 다섯 가지의 그룹이 있다고 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나는 이 중에 어떤 입장인가를 생각하면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를말씀을 응용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그룹은 사건과 현실을 놓고 무조건적으로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그룹입니다. 사건만 벌어지면 어떤 합리적인이유도 없이 거 보라구, 뭐 잘될 리가 있나? 또 그렇게 된 거지, 하면서 불평을 일삼는 그룹입니다.
이런 부정적 그룹의 식구들은 신앙인들이 해서는안 되는 일까지도 아무 죄의식 없이 해나갑니다. 이 요소가 식구 공동체 신앙풍토에 암적인 요소로 독버섯처럼 피어있습니다. 여기서는 참부모님까지도 함부로평가됩니다.

두 번째 그룹은 모든 일들을 무조건신앙적 입장으로만 해결하려하는 식구들입니다. 모든 일들을 모조리 신앙으로연결시켜 숨막히게 합니다. 때로는 신앙적 해석이란 것이 대단히 주관적일 수도있습니다.
신앙적이라는 전제 앞에 여러 사람을 숨죽이게 하고다른 사람들의 추종을 어렵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요즘 항간에 광신자로 일컬음받는 신애 아버지 같은 경우지요. 딸이 죽어 가는데 병원을 멀리하고 기도만한다는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어렵게 하듯이 통일교회의 신앙도 어렵게만듭니다.
첫 번째 그룹이나 두 번째 그룹이 다 극단적인 그룹이며타인에게 부담을 줍니다.

세 번째 그룹은 우리 주변의 일들을 세상의역학적 구조로만 보고 문제해결을 시도하고자 하는 그룹입니다.
주로 식자층에 만연된 풍토입니다. 교회나 재단의일들을 주로 정치적이나 사회의 역학 구조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평가합니다.
사건을 합리적 사고로서 모든 일을 해석하려고 합니다.이 그룹은 대단한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로 오피니언 리-더 그룹들이 여기에 속합니다.여기서는 신앙을 마치 빅 딜 하는 것처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그룹은 참부모님에대한 충성과 믿음에 대해서는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론이라든가 실수한 자에 대한 평가는 비정하리만큼 냉정합니다. 일에 관한 한 형제간에정은 없고 파벌 의식이 조장됩니다.

네 번째 그룹은 자기 소신 없이 그저 첫 번째그룹으로부터 시작해서 세 번째 그룹을 바쁘게 오가면서 사건을 퍼뜨리고 자신도수습하지 못하는 식구들입니다. 주로 소식통이라고 칭하는 그룹으로서 이 소문저 소문이 공동체에 어떤 효과나 지장이 있는가를 깊게 생각지 않고 전달하기바쁨니다.
이들은 어느 때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가 또 어느때는 보란 듯이 열심을 냅니다. 신앙의 주관이 없고 상대적이지요.

마지막 그룹은 사건의 해석을 발전적이고창조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절대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자하는 그룹입니다.이들은 형제의 잘못을 자기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건의발단과 종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건의 해석을 자기나 공동체의신앙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그룹입니다. 나쁜 소문에 귀를 막고 좋은 일에기꺼이 참여합니다. 여기서는 참부모님에 대한 경외심, 형제들에 대한 신뢰가있습니다.

저 자신은 물론 여러분들도 이 다섯 가지신앙 유형 가운데 어느 한가지에 속해 있지 않을까요. 만약 모두가 이 마지막그룹에 속해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입장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많은 식구들이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걱정과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설사 과격한 불평주의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들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은 왜 오는 것일까요? 근심의 뿌리가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래에 대한 무지와 불확실성 때문에오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단체이던 간에 불안과 공포, 근심과 두려움은미래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요. 만약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되어 있다면 우린 걱정과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철학가들은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불안과 초초가 현대인을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지요.

두 번째는 자기가 믿고있던 믿음이 불확실해질때 불안이 오는 것입니다. 자신과 확신이 없어질 때 불안이 온다는 것입니다.신앙이 상대적인 것이 될수록 더욱 불안합니다. 지난 시대로 돌아가 봅시다.선배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우리 공동체가 일 세대 때에는 춥고 배고픔은 있었어도신념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먹고 살수 있는 지금에 와서 더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변치 않는 믿음을 갖고 사는 식구들은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구조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식구들은 불안하기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까요?

훈독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집을 나가 불안에 떨던 탕자가 아버지 집에 돌아올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탕자는 집을 나갔을때 자기가 믿던 재산이 탕진 될 때까지는 불안하진 않았습니다. 탕자는 아버지를아버지로 여기질 않았습니다. 탕자의 눈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 볼 수없는 무서운 쐬기가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분석한 네 가지의 신앙부류들,
나름대로 식구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아버지를아버지로 여기지 않거나, 알아볼 수 없다면 우리는 집나간 탕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탕자는 미래가 불확실하고 믿던 것들이 무너질 때 비로소 죽음의 불안과 공포가엄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향의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1960년 2월 28일 추운 겨울날통곡하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훈독의 첫 문단 내용입니다. 탕자 같은 우리가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다 같이함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첫 문단을 다시 큰 소리로 봉독합시다.

아버지 ! 저희들은 남루한 옷을입고 추한 모습으로 본래의 자기 집을 찾아 안방에 들어온 탕자와 같사옵니다.아버님께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그리워하신 것이 6천년이었사옵고, 저희도 6천년을사탄에게 유린당하여 왔사옵니다. 아들딸을 찾기 위해 허덕이신 아버지의 안타까운심정을 저희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양이야 추하든, 얼굴이야 어떻든 아버지를알아보는 아들딸을 원하셨사오나, 아들딸이면서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붙들고 서글픈 역사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이 무슨 말을 하오리까.이제 저희는 이 땅 위에서 그 무엇을 원치 않사옵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수 있는 그 한 가지가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탕자에게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 수있게 되는 것,
이것이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탕자는 아버지를 어떻게 아버지를 아버지로알아볼 수 있었습니까?

아버지의 그 무엇이 있었길래 그랬을까요? 그것은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신뢰감이 되 살아났기 때문에 가능했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회개가 가능했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이라도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않을 것이다. 아니 설사 다시 내어 �기는 한이 있어도 돌아가겠다. 밥상에떨어진 밥을 주워먹는 한이 있어도 돌아가겠다.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결심은 탕자에게 아버지 사랑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것입니다.

두 번째 문단을 함께 봉독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탕자의 비유를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불효를 하는 자식들을 많이 볼 수 있을겁니다. 그런 불효 자식들이나 탕자를 회개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무슨 길이겠느냐? 부모가 돈을 많이 가지고 탕자를 그 돈 앞에 굴복하게 해서회개시킬 수는 없습니다. 탕자가 회심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인간으로서 개심할수 있는 하나의 길이 무엇이냐 하면 끊임없는 부모의 사랑에 부딪히게 하는것입니다. 끊임없는 그 사랑이 하늘땅보다 더 높고 깊다는 것을 느끼고, 부모가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거기에서 사랑의 본연의 가치를 느끼게 될 때, 비로소 탕자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운행되는 사랑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아멘

그렇습니다.
사랑에 대한 신뢰감이 회복된다면 우리는 선한 일을저질을 수가 있습니다.
불안을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바로 알아볼수 있습니다.
마치 탕자가 집에 돌아 올 수 있듯이 우리는 당당하게불안과 공포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거리를 두게되는공동체는 파괴되고 맙니다.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비방하기만 한다면 끝이 보이게될 것이 뻔합니다.

우리는 다섯 번째 그룹의 사람들이 되기를원합니다.

그들은 어떤 식구들입니까? 사건의 해석을 발전적이고창조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절대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자하는 그룹입니다.이들은 형제의 잘못을 자기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건의발단과 종말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건의 해석을 자기나 공동체의신앙도약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그룹입니다. 이런 그룹은 주변에 어떤 일이일어나도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강해집니다.

하이텔에 부르짖었던 선한 청년의 글처럼,현실을 해석하는 방법이 우리의 이상이 원리적 세계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현실 비판과 그 대안 또한 반드시 원리적이어야 될 것입니다.

끝으로 세 번째 문단을 함께 크게 훈독하고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생활을 하는 데는 그저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신앙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타격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충격되는말을 듣더라도 타격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령 타격받을 수 있는 일이 생겨자기가 억울한 입장에 서게 되어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나를 흥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미래의 때가, 내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환경을 넘기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 들여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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