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6일 토요일

- [이사람의 삶]- 모두 주고 떠난 옥탑방 할아버지 -

[이사람의 삶]
- 모두 주고 떠난 옥탑방 할아버지 -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저는 가족이 없는 독신자입니다.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 한 많은 세상을 떠나갑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집세 보증금 중 300만원을 받아 가십시오. 저의 시신 중 모든 부분을 장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기증하여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꼭꼭 눌러 쓴 글씨로, 자신의 장기와 월세 보증금 300만원을 기증하겠다는 유서였다. 장기기증 등록증 복사본과 불의의 사고 때 장기기증 의사를 표시하는 ‘각막기증’ ‘장기기증’ ‘시신기증’ 스티커를 붙여놓은 주민등록증도 함께 담겨 있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서울 암사동의 한 옥탑방에 홀로 살던 김모씨(68)였다. 편지를 받은 장기기증본부는 급히 경찰에 신고해 김씨 집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숨져 있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편지를 쓴 날인 지난 3일 오후 우편물을 장기기증본부와 구청에 등기로 보낸 뒤 집에 돌아와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16.5㎡(5평) 남짓한 월세 20만원짜리 옥탑방에서 홀로 살아왔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내려와 젊은 시절 건설업을 했으나 연대보증을 잘못 선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월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43만2000원이 전부였다.

김씨는 월셋방을 전전하면서도 2005년 장기기증 등록을 한 뒤 매달 장기기증본부에 5000원씩 후원해왔다고 한다.

이웃들은 김씨가 단정하고 조용했으며, 남의 도움은 매번 거절할 만큼 강직한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담당 사회복지사 김현정씨(32)는 “최근 수협에서 독거노인에게 후원금을 준다고 해서 전화를 드렸는데 한사코 거절하셨다”며 “이전에 여러 번 후원이 들어왔을 때도 매번 ‘나보다 더 못 사는 사람을 도와줘라. 고맙다’며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살던 건물 1층의 문방구 주인 장모씨(48·여)는 “술·담배도 전혀 안 하고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는 신사 중의 신사였다. 폐품 모으는 아버지에게 전해주라며 이따금 신문과 폐휴지들을 모아 문방구에 갖다 주곤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마지막 소망이었던 장기기증은 이뤄지지 못했다. 신장·간 등 장기 기증은 사후엔 불가능하고, 각막은 이식할 수 있는 시한인 ‘사후 6시간’을 넘겨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어려운 삶 속에서도 이웃과 나누고 싶어 했던 고인의 귀한 뜻을 기려 시신을 고려대 해부학교실에 기증할 것”이라며 “그가 남긴 전 재산 300만원도 장기부전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위해 뜻깊게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사·임아영기자 ro@kyunghyang.com>
- 경향신문 -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