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리뷰]
- 부뚜막의 지혜 -
텔레비전
오락프로 ‘달인’이라는 코너를 즐겨 본다.
16년 동안 한 우물을 판 달인을
풍자한 것으로 꽤 폭소를 자아낸다.
엉터리 달인의 코믹한 행동에
한바탕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정 우리 시대의 달인을 생각하게 한다.
달인은 한 분야에 오랜 세월에 걸쳐 침잠함으로써
그 대상과 한몸이 되는 경지로,
흔히 말하는 ‘도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전심을 기울여야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경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시대에 진정한 달인이 점차 사라져 갔다.
좀 인기가 있으면 하던 것을 팽개치고 너도나도 몰려갔다.
몰려 있다 보니 과도한 경쟁이 벌어져 거품이 발생하고,
그 거품의 환상에 점점 더 몰려들게 되었다.
거품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어 이전에 소홀했던,
인기가 없었던 분야가 중요해지면 그때야 야단법석 뒷북을 친다.
인기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미래를 준비한 사람이나
국가에 뒤처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익이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편협한 경제논리 추구도 한몫 했으리라.
새로움을 좇아, 부를 좇아
갈아탐으로써 깊고
오래된 문화를 저버리게 된다.
지나친 경쟁적,
관계적 삶이 필요 이상으로
우리 삶을 고단하게 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주된 동력이었다면 동력이었다.
작금에 겪고 있는
경제위기로부터 에너지, 자원 등이
중요해지면서 ‘녹색성장’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우리나라의 수준은
여전히 다른 국가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광, 풍력, 수소연료, 바이오메스 등을
얘기하지만 기술 수준은 유럽, 일본 등의 70∼80% 정도다.
이번에도 원천기술을 수입해 가공,
조립해 수출하는 구조를 크게 탈피하지 못할 것 같다.
또다시 우리의 주특기인 ‘재빨리 따라잡기’를 발휘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그래야만 하는가.
한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개발이 인기에 영합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기관은 ‘프로젝트 기반 시스템(PBS)’을 채택하고 있다.
공공의 연구·개발에 시장경제 원리를 접목한 것이다.
경쟁원리를 도입해 공공의 비효율성을 방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연구자들이 스스로 연구를 찾아 먹고살아야 하는 구조다 보니
연구가 유행을 좇아 이리저리 다니게 되고,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조용히 한 우물을 파서
달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어렵게 돼 있다.
어릴 적 부엌에는
어머니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고단한 몸이지만 하루에도 수도 없이
부엌을 들락날락하면서 분주히 움직인다.
음식을 시원스레 쓱쓱 해서 뚝딱 만들어 낸다.
그래도 그 맛은 하나 변하지 않고 일품 그대로다.
부뚜막은 닳아서 때가 까맣게 끼어 있다.
어머니의 온갖 삶의 역정이 묻어 있다.
반복을 통해 도를 깨치는 달인의 경지이다.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문학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결코 석사,
박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상상력과 직관을 발휘한다.
머리보다는 발로, 몸으로 익혔으리라.
사물이 있은 연후에 규칙(원리)이 있지
규칙이 있은 연후에 사물이 있지 않을진대
기존의 규칙을 가지고 사물을 잘못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변화무쌍한 사물 속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노력이 절실하다.
제도권, 자격증을 통한 지식만이 지식이 아니고
곳곳에 소중한 지식들이 숨어 있다.
이들을 그동안 익힌 방법론들을 활용해 밝혀내어
논리를 부여하고 포장하면 얼마든지 고유한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다시 위기가 왔다. 우리의 구조적 문제를 교정할 좋은 기회다.
- 이덕희 한국정보통신대 교수·경제학
-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기사입력 2008.12.01 (월) 20:58,
최종수정 2008.12.02 (화) 09:20
- 세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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