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일 화요일

- [세계일보 오피니언] - 박근혜를 그냥 놔두라 -

[조병철칼럼]
- 박근혜를 그냥 놔두라 -

1980년대의
낯익은 풍경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도 장면이
똑같은지 현기증이 난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야당의 쌍두마차였던
김영삼·김대중씨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양김단일화’론이 기세등등했다.
야당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 각계가 그랬고 언론도
사설이나 논평, 칼럼 등으로 단일화론을 연일 틀어댔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면 민주화는 거저 되는 줄 알았다.
87년 6·10민주항쟁이 태풍처럼
이 땅을 휩쓴 뒤 동일한 상황이 재연되었다.
단일화론이 잡초처럼 무성했지만 무참히 짓밟혔다.
그래도 양 김은 차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년이 더 흐른
2008년 12월 오늘 또다시 동일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힘을 합치라는 아우성이다.
제목은 ‘양김단일화론’에서
‘박근혜 역할론’으로 바뀌었으나 곡조는 그대로다.
가사도 ‘두 사람이 손만 맞잡으면
경제위기(그때는 민주화)는 해결될 것’이라고 변함이 없다.
다만 ‘오바마·힐러리 조를 본받자’라는
후렴구가 새로 첨가된 점이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오바마·힐러리를 본받으라는
정치권과 언론의 마이크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것 같다.
미국을 신주 모시 듯하는 그 속물근성은 약도 없나 보다.

그래,
박근혜 역할론을
주창하는 친이(親李) 인사에게 물어보자.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줄 수있는 선물은 무엇인가.
국무총리나 당대표와 각료직 몇개,
주요 당직이 고작 아닌가.
그러면 박 전 대표가 몸바쳐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당내 화합이 절로 이뤄져 경제위기가 해결된다고 믿는가.


당신이
박 전 대표나
그의 참모라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라고 권하겠는가.
당신네가 밑에서 흔들고 뒤에서 씹는데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그 여인이 이 어지러운 정국의 해결사가 되겠는가.
이 난장판이 박 전 대표 협조 하나로 해결된다는
그 치기어린 발상은 차라리 개그다.
박 전 대표가 무슨 여의주나
구세주라도 된다는 건지 말해 보라.
박 전 대표는 얼굴마담이나 얼마 하다가
무슨 핑계가 생기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고 말 것 아닌가.
꽃단장은 못 해줄망정 진흙탕에서 뒹굴라는 주문은 너무 잔인하다.
잔 다르크조차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화형당한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책임총리면
어떻겠느냐고.
이왕 줄거면 화끈하게
이원집정제의 분권형 총리를 제안해 보시지.
각료 절반의 임명권 등 권력의 49.9%(수치가 우습지만)를
넘겨주는 동거정부 형태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내 초야 인사지만
그 흡입력은 무섭다.
총선 때 110명선이었던
친이는 86명으로 24명이나 줄고
친박(親朴)은 당 밖 친박연대를 제외하고도
60석이라는 보도가 어제 나왔다.
이 대통령은 현재의 권력이지만 박 전 대표는
미래의 권력이기 때문에 빚어진 권력의 속성이다.
분권총리라도 되면
한나라당은 그날부로 친박당으로 개칭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때는 월박, 야박이 아니라
원조박, 참박, 진짜박, 순박, 전박, 후박으로 나뉠 것이다.
대통령에게 불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박 전 대표는
아직 대통령 눈치를 살피는 정치적 인질이다.
대통령 비위를 크게 거슬러선 득보다는 실이 크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 앞길에 꽃마차를 대령할 순 없어도
고추가루는 얼마든지 뿌릴 수 있다. 대선이 앞으로도 4년은 더 남았다.
박 전 대표는 지금 한나라당에서 내쫓지 않는 한 단봇짐을 쌀 수 없는 상황이다.
해코지하지 않고 건들지 않으면 고개를 쳐들거나 물지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은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문제는 절로 풀린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물에 젖은 종이는 맞들다간 찢어지기 십상이다.
박 전 대표에 공들이기보다 이 땅의 또다른 전문가나 인재를 찾는 게 급하다.
박 전 대표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냥 두면 된다.
생일에 난화분 하나 보내는 인사면 족하지 않을까?

- 조병철 논설실장
- 기사입력 2008.12.01 (월) 20:59, 최종수정 2008.12.02 (화) 16:07
- 세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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