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4일 목요일

- [지역문화]- ‘느릿느릿’ 다가선 속초 겨울 정취가 ‘새록새록’ -

- ‘느릿느릿’ 다가선 속초 겨울 정취가 ‘새록새록’ -
춘천서 소양호 지나 속초 가는 길

겨울철에 강원도 속초나 설악산을 가장 낭만적으로 가는 방법.
10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라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청량리역에서 북한강변을 달려가는 경춘선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내립니다.
여기서 시내버스로 소양호까지 갑니다.
당시만 해도 청춘들에게 춘천의 공지천변 카페 ‘이디오피아’에서
맛볼 수 있었던 원두커피 한 잔은 로망 중의 로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소양댐에서는 청평사를 오가거나 댐 일대를 도는 유람선 밖에 없지만,
그때만 해도 소양댐에서 출발한 도선은 양구선착장이나
인제의 신남선착장까지 다녔습니다.
양구나 신남선착장에 당도하면 선착장과 버스터미널을 이어주는
낡은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다시 속초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이렇게 기차로, 시내버스로, 배로, 다시 시외버스로 굽이굽이 들러서 속초에 당도하면
아침일찍 출발했어도 짧은 겨울 해는 떨어져 속초항은 짙은 어둠에 잠겼지요.

이즈음에는 어떻습니까.
서울에서 속초까지 200㎞ 남짓.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길게 잡아도 3~4시간이면 넉넉합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도 그렇고, 국도를 따라 미시령터널을 통과해서 가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맹렬한 속도로 휙휙 지나쳐간다면,
가는 길의 주변 풍광에 어디 눈 한번 둘 여유가 있겠습니까.

올 겨울 동해바다를 찾겠다면 좀 느릿느릿 가보면 어떻겠습니까.
지름길을 다 놔두고 둘러가는 길로 천천히 달려보면 어떻겠습니까.
소양댐에서 양구나 인제로 가는 뱃길은 일찌감치 끊기고 말았지만,
구불구불 물길을 따라 달리는 길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차들은 다들 새로 난 빠른 길로 옮겨가고 말아,
다른 차들을 단 한 대도 못 만나는 그런 길입니다.
춘천에서 양구로, 양구에서 다시 인제로 거기서 다시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그 길에서는 겨울 강과 겨울 호수, 그리고 겨울 바다를 다 보고 가는 길입니다.

그러잖아도 느린 길인데, 그 길에서는 자꾸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아름다운 풍광들이 발목을 잡은 탓입니다.
그 길을 따라 당도한 속초에는 지금 양미리와 도루묵,
그리고 손바닥보다 작은 고등어가 한창이었습니다.
불황의 한파로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더 추울 것이라지요.
아무래도 어려운 시절에는 옛 추억이 더 새록새록한 법입니다.
속초로 향하는 압축된 속도의 길보다 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느릿느릿 갔던 추억의 길이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일까요.
아무튼 구불구불 추억의 길을 돌아서 당도한 속초에서
연탄불에 시린 손을 녹이고 만났던 겨울 바다의 정취는 여전했습니다.

= 춘천·양구·인제·속초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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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일자 200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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