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비평]
- '조망권 불인정' 판결 환영한다 -
런던 시내 한가운데의 차이나타운 뒷골목에는 창틀 밑에다
일조권(ancient light)이라고 써 붙인 나지막한 집들을 볼 수 있다.
1832년에 제정된 시효취득법이 20년간 인접 건물의 방해 없이 햇볕을 누려온
건물의 주인에게 일조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인근 토지의 소유자는 그런 건물의 창을 가리는 일체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일조권을 가지게 된 건물의 소유자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 일대의 토지는 수십년 또는 백년도 넘게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흥미롭게도 영국법을 전수받은 미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1959년 플로리다주의 항소법원이 만장일치로 일조권 원칙을 폐기하면서부터다.
미국 법원이 일조권을 부인했던 이유는 그로 인해 지역발전에 지장이 초래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한강변 아파트의 조망권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문제의 발단은 동부 이촌동의 강변북로변에 들어선 25층짜리 한강자이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이 건물이 바로 뒤 10층짜리 리바뷰 아파트의 시야를 가리게 된 것이다.
조망을 잃은 뒤쪽 10층짜리 아파트의 주민들이 건설사와 토지소유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최종심에서 배상책임이 없다면서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는 잘된 판결이다. 기존의 조망권은 먼저 집을 지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리바뷰 아파트의 주민들은 먼저 높은 집을 지었던 덕에,
그리고 앞의 건물이 낮았던 덕에 한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한강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계속해서 앞 토지에 세워질 건물의 높이를 규제할 권리를 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부당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다.
조망권 보호의 비효율성은 금전적 가치의 변화를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망권의 가치는 조망의 대상인 한강에 가까워질수록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필지의 조망을 가림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손해는 강에 접한 토지 위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이 조망을 확보할 수 있음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이익보다 작다.
새로 지어지는 자이아파트를 예전처럼 5층으로 지었다면
조망권이 유지되는 리바뷰 아파트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에 더 가까운 자이아파트를 5층이 아니라 25층으로 지음으로 인해서
창조되는 가치는 리바뷰 아파트의 조망권 상실에 따른 가격 하락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층의 숫자를 보더라도 조망권을 부인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이득임을 알 수 있다.
자이아파트를 5층으로 지었다면 자이아파트 전층의 거주자와 리바뷰 아파트의 6층 이상
거주자가 한강을 바라볼 수 있다.
즉 뒤쪽 건물의 조망권을 보장할 경우 총 10개 층의 거주자가 한강을 바라볼 수 있다.
반면 자이아파트를 25개 층으로 지으면 리바뷰 아파트 주민이 모두 한강을 바라볼 수 없게 되는 대신,
자이아파트 주민은 25개 층 모두의 거주자들이 한강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즉 조망을 보호하지 않을 때에 비해 오히려 조망을 누릴 수 있는 층의 숫자가 15개나 더 늘어난 것이다.
미국 법원이 영국의 일조권 제도를 버리면서 했던 말이 있다.
일조권이나 조망권이 필요한 사람은 고층 지역에서 살지 말고 저층만 허용되는
주거지역으로 이사 가서 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전용주거지역은 저층만 허용된다.
아무데서나 조망권을 보호하기 시작하면 고층지역은 존재할 수 없다.
대법원의 용감하고 현명한 판결에 갈채를 보낸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세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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